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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Seoul

나의 부모님은 전라북도 정읍에서 나를 낳고 얼마 안 있어 서울로 향했다. 80년대 무작정 서울로 향했던 수많은 젊은이들 사이에 그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태어난 곳을 떠나 서울로 옮겨져 자랐고, 지금까지 인생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내고 있다. 생명이 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의태인데, 나방이 낙엽의 무늬를 하고 애벌레가 풀색을 하듯 나 역시 생존을 위해 서울을 본떴다. 하지만 익숙함과는 별개로 서울은 소속감은 내어 주지 않는다. 서울은 나의 물리적 위치와 상관없이 저 멀리 아득하게 존재하는 곳처럼 느껴진다. 내가 자란 집은 기억나는 것만 예닐곱인데, 낡은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서울은 그곳들을 모두 허물고 새 건물을 올렸다. 불안이 높고, 크고 높은 것에 정이 가지 않는 것은 아마도 나의 기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모르는 이의 뒷모습, 일렁이는 한강에 비친 불빛, 희뿌연 유리창 너머 보이는 풍경처럼 환영 같은 서울을 의태해버린 까닭일까. 나는 분명한 말로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한강물 위에 떠있는 부유물처럼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채 서울에 있다. 말이 될 수 없는 것들은 그려져야 하고, 거울을 보고 싶은 욕망은 계속해서 서울을 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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